[손길신의 철길따라①] 국가지정문화재 사적284호 구(舊) 서울역사 이야기

  • 하비엔 편집국 기자 / 2020-07-10 15: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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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엔] 1899년 7월 8일 경인철도(인천-유현-우각동-부평-소사-오류동-노량진-용산-남대문-경성)의 중간 역 남대문 역으로 시작된 구 서울역은 1906년 4월 3일 용산시발~수색~신의주 간 개통된 경의선을 1917년 남대문시발-서대문(경성)-수색~신의주 간으로 노선 변경계획을 (1917.11.17.부산일보)확정했다.

남대문역을 1918년부터 1919년까지 일본 도쿄역과 같은 규모로 개축하고 명칭도 경성역으로 변경한다는 계획을 확정 발표하였고(1918.02.23. 및 4.26일 부산일보), 1918년 도쿄역을 설계했던 다스노긴고(辰野堅固)의 제자인 도쿄제국대학 스카모토야스시(塚本靖)교수가 신축 남대문역 설계를 완료(1918. 12.28. 부산일보) 하였지만 신축공사는 계획대로 시작되지 못했다.

1919년 3월 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되면서 최초의 서울(경성)역이었던 서대문역(1905.03.27.역명변경) 광장이 3월 1일에 이어 5일에도 독립만세운동의 집결지로 활용되자 서대문역 폐지를 결정하고(1919.03.18.매일신보), 서둘러서 3월31일자로 폐지하였으며, 1919년 9월 2일에는 신한촌노인단의 65세 강우규 의사가 신임 사이토마코토총독(齊藤實)이 남대문역에 도착하여 마차를 타는 순간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인 기자 2명이 사망하고 경호원 등 35명이 부상을 입었지만 총독은 경상만 입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경의선 노선변경은 계획대로 진행되어 남대문역과 수색역 사이에 신촌역을 신설하고 1921년07월11일부터 남대문역을 출발하여 신촌과 수색 및 신의주를 경유하여 중국까지 열차운행이 시작되었다.

 

▲경의선 노선변경 계획
남대문역 신축공사는 뒤늦게 1922년 6월 시작한 후 역명을 1923년 1월 1일 계획대로 경성역으로 변경하였고, 1925년 9월 말 준공되어 10월15일부터 운영이 시작된 오늘날의 구 서울역사는 지하1층, 지상2층의 3층 구조로 지하에는 역무실, 소화물취급소, 기관실, 구내 및 열차식당사무실, 요리실, 배전실, 창고 등을 배치하였고, 1층에는 역장실과 귀빈실, 1,2등 및 부인용 대합실, 3등 대합실, 매표실, 유료화장실 등이 설치되었으며, 2층에는 열차승무원사무실, 직원교양 및 회의실, 대식당(한국최초의 경양식 식당)과 별실 및 요리실, 이발실 등이 설치되었으며, 당시 식당 별실에서 사용되었던 집기는 현재 철도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필자는 1960년대 서울역 역무원으로, 2층 서울열차사무소승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명절 승차권 발매 때는 대나무 장대를 들고나가 질서유지업무에 참여했고, 2004년 서울역에 개관되었던 철도박물관 서울역관 철거 및 통합작업에 참여하였으며, 철도박물관 근무 시 전 교통부장관 고 이종림씨 자택을 방문하여 유족들로부터 자료를 수집하기도 하였다.

이종림씨는 사무조역(지금의 부역장급)으로 근무 중 해방을 맞았고, 1945년 9월 미군정 교통국장 Word L. Hamilton중령의 서울역 시찰 때 동행한 통역보다 더 유창한 영어로 업무보고를 한 인연으로 11월25일 한국인 최초의 서울역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장관 퇴임 후 1980년대 모 일간지와 인터뷰했던 당시의 보도 자료를 간략히 소개한다. 

인터뷰에서 그는 “8.15 그날부터 며칠 사이의 이야기는 한권의 책이 될 만하며, 당시의 혼란을 표현하기에는 말로는 부족합니다.”라는 대답으로 해방당시를 표현했다. 서울역은 해방 격동의 물결이 집결되는 중심지였으며 시시각각 무질서하게 넘쳐나는 감격을 억제시켜야 했고, 쫒겨가는 일본인들은 무사하게 수송해야 했으며 건준(조선건국준비위원회) 등으로 부터의 근거도 없는 지시로부터 철도를 보호해야 했다. 일예로 서울역의 귀빈실은 황족(皇族)이 사용하는 특별실인데 소련군이 원산을 출발하여 서울로 진군 중이니 귀빈실을 사용케 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그렇게는 할 수 없으니 일반 집찰구(집표구)를 사용토록 하겠다고 거절하고도 내심 걱정했지만 그때는 소련군이 오지 않아 별일 없이 지나갔단다.  

그 후 1947.5.8.일 및 10.22일자 자유신문에 의하면 소련군은 조선통일임시정부수립 협의를 위한 미소공동위원회 참여 차 슈티코프 대장 외 70여명이 5월 6일 소련군전용 제1002열차편으로 도착하여 재경소련연락사무소에 체류하다가 10월21일 10:45분발 제2293열차편을 이용하여 평양으로 철수하였다한다. 
1947년11월 1일 경성역은 ‘서울역’으로 변경되었으며, 서울역은 국내 모든 중요행사가 관련되어 우리 민족의 역사(歷史)를 품은 역사(驛舍)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철도박물관 서울역관
1981년 9월25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284호로 지정된 구 서울역사 일부 공간에 3년여 동안의 설치작업으로 1997년 4월 1일 개관된 철도박물관 서울역관에는 역사관을 비롯하여 1992년 공사가 시작된 고속철도 홍보관 등이 설치되어 철도이용 여객은 물론 서울지구의 유치원을 비롯한 많은 학생들의 단체관람이 줄을 이었으나 2004년 고속철도 개통에 대비하여 새로운 서울역사가 2003년11월28일 준공됨에 따라 모든 기능이 신역사로 이전되면서 12월16일 철도박물관 서울역관도 폐관하여 경기도 의왕시의 철도박물관에 통합되었다.     
  
▲1925.9.30일 경성(서울)역
2007년 철도청으로부터 구 서울역사 관리를 이관 받은 문화체육관광부는 건축 후 92년이 경과한 역사 복원공사를 진행하면서 2010년 서울역전시콘텐츠 통합 DB구축을 준비했지만 방침을 변경하여 2011년 8월 ‘문화역 서울284’라는 이름의 복합전시문화공간을 탄생시켰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프랑스에서 철도노선 변경으로 철거하려던 오르세(Orsay)역을 미술관으로 활용하여 유명한 오르세미술관이 탄생한 사례를 높이 평가한 결과라 추정되며, 우리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도 아쉬움을 떨치기 어렵다. 

오르세역은 철거대상 건물이었지만 구 서울역사는 철도관련 문화재 중 사적(史蹟)284호로 지정된 유일한 국가지정문화재다.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한다 하여도 최소한 사적으로서의 가치는 보존되어야 된다는 생각이며, 지하부터 2층까지 많은 공간 중 일부를 ‘철도역사관’ 등 상설 전시관으로 활용한다면 복합문화공간에 시너지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판단이다. 철도박물관을 설치하여 운용하던 당시도 서울역이나 2층의 열차사무소, 교양실, 서울역그릴 등이 정상적으로 운용되는 공존의 시설이었음을 상기시키고 싶은 마음에서 구 서울역사이야기를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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