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신의 기차로, 세계로 2화] 프로펠러로 달렸던 고속철도

편집국 / 기사승인 : 2022-02-04 19:31:50
  • -
  • +
  • 인쇄
세계 최초 고속철도…1959년 착공 1964년 도쿄~오사카 간 일본 신칸센으로 알려져
독일 룩켄베르크…1931년 프로펠라 추진식 철도차량 쉬넨체펠린 역사상 최초 200㎞/h 돌파
▲도로 옆을 달리는 독일 고속철도 ICE

 

[하비엔=편집국] 필자는 1995년 철도청 수도권 전철 업무로 유럽 출장 중 독일에서 고속철도(ICE)에 승차한 후 일반열차와 별로 다른 점을 느끼지 못하던 중 마침 도로 옆을 지나면서 앞서가던 승용차들이 순식간에 뒤로 쳐지는 모습을 보면서야 고속열차의 엄청난 속도감을 느끼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일본 최초의 신칸센열차

일반철도와 고속철도를 구분하는 기준이 국제철도연맹이나 유럽 및 일본과 한국에서도 기존 선로에서 200㎞/h 이상의 속도로 달리는 철도를 고속철도로 분류하며, 세계 최초의 고속철도는 1959년 착공하여 1964년 10월 1일 도쿄 올림픽 개최에 맞춰 도쿄~오사카 간을 시속 210㎞/h로 달렸던 일본 신칸센(新幹線)으로 알려져 있다.
▲1930.11.27.경성일보

 

필자는 1930년 11월 27일 경성일보에서 뜻밖의 기사를 보았다. ‘프로펠라 고속철도를 독일에서 새로 발명했으며, 앞에 프로펠러를 단 이 열차는 초특급열차의 2배 속도로 달리며, 시 운전 결과도 좋은 괴상한 열차라는 내용을 읽고 찾아본 1930년대 유럽의 고속철도 개발과 관련된 이야기를 소개한다.


George Stephenson이 '레인힐 기관차 경주대회에서 우승하여 1830년 Manchester ~ Liverpool 간 여객과 화물 수송을 시작하면서 철도운송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100년이 지난 1930년대는 유럽 각국이 철도산업 경쟁에 열을 올리던 시절이었다.

가장 먼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사건은 영국의 발명가 George Bennie(1891~1957)이 1929년부터 1930년 사이에 글래스고우의 밀른게이브 분기 철도의 30피트(약 9.15m) 상공에 428피트(약 130m)의 모노레일을 설치하고 앞, 뒤의 프로펠러로 달리는 기차(레일 플레인)를 매달아 193㎞/h의 속도로 달리던 일이었다. 

 

시간을 아끼려는 승객과 우편물, 부패하기 쉬운 상품을 수송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며, 최대 48명을 태울 수 있었으며, 부유한 숭객들을 위해 양탄자를 깔고 널찍하고 고급스러운 좌석을 배치한 일등석도 마련하였다.

 

▲ 사진 좌부터 레일 플레인, 일반석, 일등석

 

죠지 베니는 레일 플레인 제작과 구조물 설치 등을 모두 사재를 투자하여 성공적으로 시운전을 마쳤지만 새로운 교통 시스템 개발에 필요한 재정적 지원을 얻어내는 데는 실패하여 결국1937년에 파산하였다. 

 

시제품 레일 플레인은 1956년 고철로 헐값에 팔릴 때까지 멀가이의 들판에 방치된 채 녹이 슬었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베니는 그 다음 해에 죽었으며, 멀가이 차량이 정차하였던 정거장 자리는 목재상 건물이 들어섰고, 그 건물 외벽에는 밀른게이브 구의회가 만든 초라한 기념 현판이 남아있을 뿐이다.
▲ 레일 플레인 기념 현판


독일 조선(造船) 설계 전문가로 항공 설계업무에 종사하는 룩켄베르크(Franz Kruckenberg 1882~1965)가 1930년 초부터 프로펠라 추진식 철도차량 쉬넨체펠린(Schienenzeppelin)이라 불리는 이 고속열차를 개발하여 1931년 5월 10일 철도 역사상 최초로 200㎞/h를 돌파했다. 

 

동년 6월 21일 베르린~함부르크 간 275㎞를 98분에 주파하여 시속 230.2㎞/h의 기록으로, 기존 선로에서 200㎞/h 이상 속도의 철도를 고속철도로 분류하는 기준에 따르면 고속철도는 이때 처음 탄생한 것이다.

 

▲사진 좌측부터 개발 초기의 모습, 달리는 모습의 Schienenzeppelin, 당시 신문보도 내용 승강장 정차 중 모습

 

이 차량은 20.3ton, 길이 25.85m, 높이 2.8m, 휠베이스 19.6m로 600마력의 BMW Ⅵ형 12기통 항공 엔진으로 구동되는 목제 4엽 고정 피치 프로펠러가 장착되었다. 

 

프로펠러 구동축은 7도 기울어져 차량을 추진키고, 동시에 아래로 누르는 다운포스를 얻고 있었다. 차체는 공기역학을 이용한 설계로 경량화를 위하여 항공기 재료를 활용하고, 연료는 가소린이었으며, 처음 4개로 된 프로펠러 날개는 개량과정에서 2개로 축소되었다.

이 차량의 단점은 프로펠러가 노출된 상태로 작동하여 역 구내 착・발 시 위험스러웠고, 후부에 프로펠러가 있어 차량을 추가하여 연결할 수도 없는 결점이 있어, 단독차량 열차로 특수목적을 위해 운행되었다고 전해지며,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관련된 기술의 유출을 두려워했던 독일 당국은 차량을 해체하여 흔적을 남기지 않아 철도 역사상 최초로 200㎞/h 이상의 고속철도 속도 기록만을 간직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Pioneer Zephyr

 

미국의 경우 속도보다는 좀 더 많은 화물의 장거리 수송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고속철도에는 관심이 적었다 하나 1934년 5월 26일, ‘Pioneer Zephyr’열차가 덴버에서 시카고까지 13시간 만에 최고 속도 181.1km/h의 기록(1935.12.15. 매일신보 ‘미국의 탄환 열차’로 소개)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대공황으로 도시 간 철도 여행에 대한 수요가 줄어, 철도 운영사들은 승객을 끌기 위해 증기 기관차를 유선형으로 개조하였고, 증기 기관차 중 일부는 속도가 190km/h를 초과하여 운행되었다 한다.


일본은 신칸선을 1959년 착공했지만 1930년대부터 고속철도 연구를 시작했으며, 1935년 7월 5일 부산일보에는 부산~서울 간 ‘탄환 열차’를 시험 운전했던 기록이 남아있다.

 

 

 

 

 

[저작권자ⓒ 하비엔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속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