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신의 철길 따라⑪] 25년 만에 다시 개업한 수인선 어천역의 57년 전 이야기

  • 하비엔 편집국 / 2020-09-21 15:29:52
▲어천역 근무 시 필자(196310)
[하비엔=하비엔 편집국] 지난 9월12일 옛 수인선이 개통된다는 뉴스를 보고 57년 전(1963년 8월17일) 역무원으로 근무했던 어천역을 찾았다. 그리고 생각나는 옛 이야기를 정리해본다. 

 

1961년 5.16 후 공무원 공개채용시험제도가 생겨 필자는 1962년 두 번째 5급(지금의 9급)공무원임용고시를 거쳐 1963년 교통부로 배정되어 10일간의 신입부원교육을 마친 후 수인선 어천역 역무원으로 발령을 받고 수원에서 버스를 타고 어천역으로 향하던 중 멀리 조그마한 기차가 보여 근처에 광산이 있나보다는 생각을 하고 어천역에 도착하여 좀 전에 보았던 조그마한 열차가 정차하여 승객들이 타고내리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협궤선 꼬마열차를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협궤비교

수인선은 경동철도회사가 수원~여주 간 광궤선(표준궤간 1,435㎜) 부설허가를 받은 후 자금부족으로 협궤선으로 변경하여 부설한 후 1937년 수원~인천항 간 수인선도 협궤선으로 부설한 선로로 선로 궤간이 광궤선의 절반 수준인 762㎜의 좁은 선로와 기관차는 크기나 속도가 거의 1/3수준이며, 객차는 광궤선 72석에 비해 거의 절반 수준인 38석 정원이었으며, 1995년 말 폐선 되었던 철도노선이다.
▲옛 협궤선 열차(상)와 현 전동열차(하) 

 

▲옛 어천역(상)과 현재 어천역(하)


수인선 어천역에서 시작된 철도 초임시절 매일 작성하여 보고하는 일보를 포함하여 거의 모든 장표가 얇은 습자지로 된 보존 편과 보고용 일반용지가 한 세트로 되어있어 사이에 먹지를 끼우고 그 밑에는 다음 페이지에 영향이 없도록 책받침을 받친 후 골필로 작성하여 먹지로 복사된 보고 편을 떼어서 매일 열차편을 이용하여 서울로 보고하였는데, 골필로 그냥 쓰면 얇은 보존 편이 자주 찢어져 그 위에 투명 셀로판지를 덮고 써야 했으며, 셀로판지는 당시 담배 갑 겉 포장지에서 쉽게 얻을 수 있기에 일보작성에 필요한 셀로판지를 얻기 위하여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으며, 당시 급여는 월 4,000원 정도로 기억된다.

▲옛 신호기와 석유램프

 

그 후 부친이 구해준 미제 볼펜(당시 국산 볼펜은 없었음)은 셀로판지가 없어도 얇은 종이가 찢어지지 않는 신기한 필기구였으며, 같이 근무하던 선배님들도 신기한 볼펜을 무척이나 부러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양측의 높은 신호기에는 전등이 설치되지 않아 매일 해지기 전 불을 켠 석유램프를 들고 신호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장착했다가 아침에 해가 뜨면 다시 올라가 석유램프를 가져와서 깨끗이 청소하고, 기름을 채우는 등 정비하여, 역장님의 검사(심지에 불을 켠 후 힘껏 휘둘러서 불꽃이 흔들리지 않아야 함)를 받은 후 보관했다가 저녁에 사용하였다.

어천역 근무 중 잊을 수 없는 것은 주민들과의 관계다. 언제나 한 가족과 같은 친근감에서인지 마을의 모든 행사에 역 직원들이 초대받았다. 심지어 농사철에는 가까운 들에서 일하다가 새참을 먹는 때 까지 초대하여, 열차시간 때문에 갈 수 없을 때는 음식을 사무실까지 보내주시기 때문에 우리들은 미안해서도 시간이 가능하면 들에 나가 함께 새참을 먹기도 했다.  

▲ 매표·개집표구 예전(????)과 현재 모습(????)


당시 어천역을 이용하는 승객은 수원이 가깝기 때문에 출퇴근하는 직장인과 통학생이 주를 이루었고, 시골 농산물을 수원에 나가 팔기위해서 나가는 부녀자들이 대부분이었으며, 특수일근지로 1일 4왕복 8개열차로 아침 6시 첫차부터 시작하여 저녁 7시 40분이면 막차가 떠나고 업무정리를 하면 9시 이전에는 숙직 딤당자 1명을 제외하고 퇴근했으며 매일 18시에는 전일 18시 이후부터 당일 18시까지의 여객과 화물 수송량을 수원역 전신취급자에게 구두보고하면 전신취급자는 각역 보고사항을 종합하여 전신기를 이용 모스부호로 본부에 보고하는 시스템이었다.

▲옛 승강장(상)과 현재의 승강장(하)

 


10월에는 전국의 소금생산량 70%정도를 생산하는 소래와 남동의 소금을 수송하는 열차가 밤새 운행되었으며, 하중 20여 톤의 협궤선 소금적재 화차는 수원역에서 하중 40~50톤의 광궤선 화차에 환적하여 전국 각지로 수송되었으며,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객차 내는 양쪽에서 발을 뻗으면 서로 닿을 정도로 좁아서 농산물을 이고 진 사람들이 승차하면 통행이 불편할 정도였다.


좀 특이한 것은 열차 차장에게는 사법권이 주어졌던 때로, 열차를 승무하는 차장의 옆구리에는 항상 수갑이 매달려 있어, 마치 경찰관이 근무하는 모습 같았다.

▲옛(상)과 현재(하) 객차내 모습

어천역에 부임하여 7개월가량 근무했을 때 서울철도국장님이 모터카 편으로 현장순시를 나와 이야기 중 역장님께 애로사항은 없냐는 질문에 역장님은 “그런 일은 없습니다”고 답변 하셨는데, 갑자기 내가 나서서 “저의 애로사항은 작은 역에서 배울 건 다 배웠으니 큰 곳으로 보내주십시오”라고 하여 모두를 당황케 하여 역장님께 꾸중을 들었지만, 국장님이 웃으시며 돌아가신 일주일 후 서울역으로 발령이 나서 어천역을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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