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문일답] 신원호 감독 "'슬의생2' 이경미 환자 에피, 사람 준완의 마음 담겨 신선했다"

노이슬 / 기사승인 : 2021-10-08 07: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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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호 감독 X이우정 작가의 세번째 '슬기로운' 시리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최종회 전국 평균 14.1%로 자체 최고 시청률 경신
-조정석 유연석 정경호 김대명 전미도까지 '99즈' 찐케미와 따뜻한 이야기로 매회 힐링 선사

[하비엔=노이슬 기자] "그저 보면서 마음이 편해지고 위로받는 기분이었으면 했다. 사실 공유 같은 도깨비도 없고 박보검 같은 남자친구도 없다. 어차피 모든 드라마가 판타지라면 그나마 좋은 사람들의 세상은 그나마 더 현실에 가까운 판타지 아닐까 싶다."

 

지난 9월 종영한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연출 신원호, 극본 이우정, 기획 tvN, 제작 에그이즈커밍)가 뜨거운 관심과 사랑 속에 최종회가 전국 평균 14.1%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 유종의 미를 거뒀다.

 

▲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 연출을 맡은 신원호 감독/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두 번째 시즌이자 '슬기로운' 시리즈의 세 번째 주자인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에 대한 시청 열기는 가히 신드롬 수준이었다. 주 1회 방송과 시즌제, 의학 드라마에 밴드를 접목시키는 등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 것은 물론, 희로애락이 동반된 스토리와 99즈의 케미로 매주 목요일 밤에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힐링을 선사했다. 이와 함께 '미도와 파라솔'이 부른 OST가 매회 음원차트 상위권에 머무르며 종합 콘텐츠를 선사했다.

 

이같은 '슬기로운' 시리즈의 성공에는 '응답하라' 시리즈와 '슬기로운' 시리즈 등을 선보인 신원호 감독과 이우정 작가의 오랜 협업의 힘이 존재한다. 특히 '의학물'이라는 전문적 분야를 택하면서 전문적인 지식은 물론, 웃음과 감동 코드까지 모든 장르를 아우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종영 후 신원호 감독은 하비엔과 서면 인터뷰를 통해 '슬기로운' 시리즈에 많은 사랑을 준 시청자들에 보답했다. 다음은 신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Q1.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시즌1에 이어 시즌2까지 시청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습니다. 종영한 소감과 함께 감독님께서 생각하시는 인기 요인은 무엇이었는지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A. 보시는 분들이 각기 매력을 느끼는 부분들, 예를 들어 누군가는 다섯 동기들의 케미, 또 누군가는 음악 혹은 밴드, 누군가는 환자, 보호자들의 따뜻한 이야기, 누군가는 러브라인, 누군가는 많은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에 호감을 갖고 들어오셨다가 또 다른 포인트들에 매력을 느끼시고 사랑을 주신 것 아닐까 짐작한다. 그리고 그 중 하나를 굳이 꼽으라면 아마도 다섯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캐릭터와 케미스트리, 그리고 그들이 그려내는 율제병원 안의 소소한 사람 이야기에 점수를 많이 주신 것 아닐까 싶다.

 

그리고 시즌2로 국한해서 생각해보면 단연 ‘내적 친밀감’이 가장 크지 않았을까 한다. 시즌1에서 시즌2로 건너오며 생긴 2년여의 시간속에서 드라마 자체와의 친밀감, 캐릭터, 배우들과 갖게 되는 내적 친밀감이라는 게 생긴다. 익히 아는 캐릭터, 익히 아는 관계, 익히 아는 이야기들 이라는 생각에 거리감이 많이 좁혀졌던 게 시즌2의 가장 큰 인기 요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 연출을 맡은 신원호 감독과 99즈(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유연석 정경호 신원호 조정석 김대명 전미도/tvN


Q2. 2개의 시즌 동안 함께 호흡한 배우들과의 기억도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조정석, 유연석, 정경호, 김대명, 전미도, 99즈와의 2회차 호흡 어떠셨나요?

 

A. 신기한 경험이었다. 첫 촬영날도 그랬고, 다섯 명이 모두 모인 씬을 처음 찍던 날도 그랬고, 시즌1 이후 10개월 가까운 공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말같이 어제 찍다가 다시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실 첫 촬영이라 하면 으레 거쳐야 하는 과정들이 있다. 서로의 호흡을 맞춰가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 부분이 아예 생략되고 물 흐르듯이 진행되다 보니까 그게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배우들이며 스탭들도 현장에서 이런 얘기를 많이 했었다. 스탭들, 배우들간의 내적 친밀감도 2년여의 시간 동안 어느새 두텁게 쌓이다 보니 시즌2는 훨씬 더 촘촘한 케미로 이어질 수 있었고 그 모든 과정 자체가 신선한 경험이었다.

 

Q3. 99즈 외에 신현빈, 정문성, 곽선영, 김해숙, 김갑수, 최영준, 하선빈, 문태유 등 수많은 배우들도 활약을 했는데요. 그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더불어 특별출연 해주신 배우분들께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다른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다. 거짓말같이 어제 만나고 또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실 촬영 횟수로 보면 99즈 다섯 배우들에 비해서는 적은데도 불구하고 어제 호흡 맞췄다가 다시 오늘 촬영하는 것처럼 너무 자연스러워서 다들 신기해 했었다.

 

시즌2 하면서 하나 달라진 느낌이 있었다면, 다들 한층 더 매력있는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점이었다. 다들 한 명도 빠짐없이 너무 멋지고 성숙해진 모습으로 나타나서 스탭들이 각 배우들의 첫 등장 촬영 때마다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사랑받는다는 것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다시 한번 느꼈던 순간들이었다.

 

특별 출연 해주신 배우분들에게는 항상 감사한 마음 뿐이다. 늘 빚지는 기분으로 연락 드리고, 늘 술 백 번 사겠다고 말씀드리는데, 사실 시즌1 특별 출연 해주신 분들에게도 시국이 이러다 보니 자리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 아직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언제고 꼭 연락 드리고 한 분 한 분 찾아 뵙겠다.

  

특히 현정화 감독님의 경우 너무 감사했다. 탁구 대회 에피소드는 스토리 전개 상 마지막에 어마어마한 고수가 나와 주셔야 했고, 그래서 현정화 감독님께 연락 드렸다. 복식이다 보니 선수 한 분이 더 필요했었는데 직접 발벗고 나서서 너무 열심히 섭외를 해주셨다. 올림픽이 코앞이라 섭외가 쉽지 않았는데도 끝까지 열심히 섭외를 해주셨고, 너무 감사하게도 주세혁 선수가 함께 나와 주셨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연기를 하시는 분들도 아니신데 두 분 모두 대사 연습도 많이 해 오셔서 연기도 흠 잡을 데 없었다.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 뿐이다.


Q4. 특히 탁구 대회 장면의 경우 올림픽 시즌이 딱 끝난 후 방송이 되어 더욱 화제가 됐는데요.

 

A. 올림픽 시즌을 염두 하고 만든 에피소드는 전혀 아니다. 처음 초반 기획 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에피소드다. 일단 기본적으로 그렇게 수많은 과들이 모여서 탁구 대회를 한다는 것 자체도 재미있는 그림일 것 같았지만, 그보다도 지금까지 못 보여드렸던 여타 과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대진표에 적힌 수많은 과들의 이름만 봐도 ‘병원 안에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하고 있구나, 환자 한 명을 보기 위해 그저 한 두개의 과만 움직이는 게 아니구나’라는 느낌이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으로 탁구 대회를 빌었던 거다. 사실 탁구대회가 포함된 9화의 큰 맥락이 그거였다. 수많은 과의 수많은 분들이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Q5. 시즌2에서 시청자들의 관심이 가장 컸던 부분은 바로 99즈의 로맨스 결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연출하시면서 가장 중점을 두신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 물론 로맨스에 초점을 맞추고 보면 다 보이겠지만 워낙 로맨스만의 드라마가 아니다보니 러브라인의 흐름이 빠르거나 밀도가 촘촘할 수가 없다. 연출자의 입장에서 다른 장면들에 비해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아마 그런 점들 때문에 조금 더 차근히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살짝 느릿하게 호흡을 더 가져가려 했던 정도 였던 것 같다. 실제 그 호흡, 그 분위기, 그 공간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연출하려 했던 장면들이 많았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 연출을 맡은 신원호 감독/tvN


Q6.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시작으로 시즌제 드라마들이 잇따라 등장했고, 주1회 새로운 시청 패턴의 선두주자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시즌 2까지 마친 지금, 감독님이 직접 경험하신 시즌제 드라마의 장단점, 그리고 주1회 드라마를 연출하시면서 느낀 강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이제 주 2회 드라마는 다신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2개씩 했었던 전작들은 어떻게 해냈던 건지 지금으로선 상상도 안 간다. 이건 저 뿐만 아니라 스탭과 배우들 모두 공히 피부로 체감하는 부분이다.

 

아무래도 현장의 피로함이 줄어드니 그 여유가 결국 다시 현장의 효율로 돌아오게 된다. 그 점이 주 1회 드라마가 가진 최고의 강점 아닐까 싶다. 매회 그 어려운 밴드곡들을 위해 연기자들에게 그렇게 여유있는 연습시간이 주어질 수 있었던 것도 주 1회 방송이라는 형식이 준 여유 덕분이다. 

 

시즌제의 가장 큰 강점은 내적 친밀감 아닐까 싶다. 모든 드라마가 마찬가지겠지만, 제작진에게 가장 큰 숙제는 1회다. 1회에서 드라마의 방향성과 캐릭터들을 효과적으로, 지루하지 않게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하는 것이 늘 큰 고민인데, 시즌제에선 시즌1을 제외하고는 그 고민을 생략하고 시작할 수 있다. 그냥 바로 이야기가 시작되어도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고 이미 친한 캐릭터, 익숙한 내용들이다 보니까 쉽게 받아들이고 접근할 수 있다. 기획을 할 때 예상을 했었던 부분이긴 해도 이 정도로 큰 강점으로 올 줄은 몰랐었다. 제작 단계에서도 편리하다. 캐스팅이며 로케이션이며 세트며 소품이며 의상이며 모든 면에서 각기 새롭게 등장하는 것들을 보충하는 것 외에는 이미 세팅되어 있는 부분들이 많다보니 준비기간도 어마어마하게 단축된다. 그래서 중간에 ‘하드털이’도 할 수 있었던 거고… 어쨌든 여러 측면에서 매우 효율적이고도 영리한 형식인 건 확실하다.

 

Q7.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철저하게 기획된 시즌제, IP 전략의 성공이라는 얘기가 많습니다. 특히 시즌1과 2사이의 공백을 매주 공개한 하드털이가 채웠고, 슬기로운 캠핑생활도 방송되면서 유일무이한 행보를 보여줬는데요. 어떤 과정을 거쳤고, 그 과정들의 중심에 계셨던 감독님의 소회가 궁금합니다.

 

A. 시즌제 드라마를 만들면서 가장 신선했던 부분이 시즌1의 마지막 회와 시즌2의 첫 회였다. 이렇게 끝내도 돼? 이렇게 시작해도 돼? 싶은 느낌이 들어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다만 기다리시는 입장에서는 마치 12회를 끝나고 13회를 1년 동안 궁금해하며 기다려야 하다보니 그 부분에 대한 어떤 보상을 좀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하드털이’를 시작하게 된 첫 번째 이유다. 보통 드라마에서 못 보여드렸던 장면은 블루레이나 DVD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렇게 한정적인 분들이 보시는 것 보다는 공개적으로 시즌 2를 기다리시는 많은 시청자분들이 보실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유튜브라는 매체를 실질적으로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컸다. 5~10분 사이로 짤막하게 하고 싶었는데, 하면 할수록 분량이 늘어나고 점점 더 꼼꼼하게 체크하게 되고 하다 보니까 갈수록 예능 할 때 만큼이나 힘들었었다. 드라마 준비도 해야하고, 거기에 매주 하나씩 콘텐츠를 편집부터 자막, 음악도 넣고 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매주 하나씩 편성이 된 거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도 힘들었던 것 같다. 근데 한편 너무 재미있었다. 십년 만에 예능을 하는 셈이다 보니까. 처음에는 내가 십년 만에 자막을 뽑을 수 있을까, 예능 버라이어티 편집에서 자막을 뽑는다는 일 자체가 핵심이라 예능 감이 떨어져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하다 보니까 예전에 그 세포들이 다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사실은 힘든데 되게 재미있었다. 어떻게 보면 드라마 할 때보다 더 즐기면서 했던 것 같다.

 

슬기로운 캠핑생활의 경우는 정말 순수히 배우들로부터 시작된 컨텐츠였다. 시즌2 준비과정과 겹치면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그렇게 단순하고도 순수하게 컨텐츠가 시작될 수 있다는 점, 그렇게 순수한 진심으로 만들면 큰 기술 없이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우연한 컨텐츠 하나가 출장 십오야 같은 다른 줄기로도 충분히 확장되어 갈 수 있다는 점들을 목격하면서 수년간 쌓아왔던 많은 편견들을 스스로 깨트릴 수 있었던 놀라운 경험이었다.  

 

Q8. 최근 인기 드라마를 웹툰화로 웹툰을 드라마화 하는 등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새로운 버전으로 보여주면서 원작 팬들에 다양한 즐거움을 주는 것이 대세입니다. '슬의생' 시리즈도 드라마 본편, 하드털이 등도 있지만 새로운 스타일로 웹툰이나 소설책 등으로 제작 의향이 있으신지 묻고 싶습니다. 특히 감독님께서 과거 인터뷰에서 영화감독이 꿈이라고 하신 바. 영화화 가능성도 궁금합니다.

 

A. 생각은 안해봤다. 웹툰이나 소설은 또 다른 분들의 손에 맡겨야 하다 보니까 연출의 연장선상이라기 보다는 비즈니스의 연장이라 큰 관심은 없다. 오히려 비슷한 류의 장르, 이를테면  영화나 연극, 뮤지컬 쪽으로는 어떻게 다른 형태로 바뀔 수 있을까 보고 싶은 생각은 있다. 결정적인 건 연출자는 저작권이 없기 때문에 사실 그런 권리도  없긴 하다.

 

영화는 훨씬 더 극적이고 스펙터클해야 하는 장르라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정서와 맞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고 언젠가 할 것 같기는 하지만 이 작품으로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이 작품에서 보고 싶어 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사랑을 주셨던 건데, 영화화 되면서 새로운 느낌의 작품으로 뒤바꾼다면 그 때도 그 작품이 여전히 ‘슬기로운 의사생활’일까 라는 생각은 든다. 

 

Q9.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에서 로맨스 라인을 향한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는데요.. 익송, 겨울정원, 준순, 곰곰 커플까지, 각각 그 분위기가 다 달라서 시청자들 역시 각각 응원하고 지지하는 커플이 달랐었는데요. 각 커플별로 감독님께서 보여주고 싶으셨던 분위기나 색깔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익준이랑 송화 같은 경우는 어떻게 보면 저희가 가장 잘 해왔던 색깔이긴 했다. 오래된 친구 사이에서 벌어지는 타이밍의 엇갈림, 여러 상황들의 엇갈림, 그 가운데서 애타는 마음과 결국엔 절절하게 이루어지는 스토리 축은 워낙 ‘응답’ 때부터 많이 보여줬던 색깔이긴 한데, 그 때보다는 더 연한 색깔로 가야 된다고 생각했다. 친구들간의 케미를 깨뜨리지 않으면서 은근하게 시즌1과 시즌2 전체의 축이 되어줘야 했던 러브라인이라서 그 적당한 밀도를 지켜가야 하는 점을 가장 많이 신경 썼던 것 같다. 선을 넘지 않는, 조금씩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보는 분들도, 캐릭터들도 서서히 물들도록 하려고 했다. 그래서 찍으면서 좀 과하다, 눈빛이 진하다, 너무 멜로 느낌이다 하는 것들을 많이 걸러내고 조금 더 천천히 진행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키였던 것 같다. 11화 마지막씬에서 어쩌면 무모해 보일 수 있었던 롱테이크로 갔던 이유도 20년의 친구에서 연인이 되는 씬이 후루룩 넘어가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친구에서 연인이 되는 순간 분명 넘기 힘든 감정들이 있다. 그 부분들이 납득되도록 연출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거의 2분이 가까운 롱테이크가 그 간극을 좀 채워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둘이 친구에서 연인이 되는 과정에 이렇게 긴 호흡이 있어야 보시는 분들도 그 숨막힐 듯한 공기와 분위기를 함께 느끼며 ‘맞아 맞아, 저럴 것 같아’라고 설득이 될 것 같았다. 느릿했던 그 씬이 어떻게 보면 익준 송화 커플의 가장 큰 특징을 가장 잘 함축하고 있는 씬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정원, 겨울 같은 경우, 정원이의 절절했던 마음과 신부가 되고 싶은 마음 사이의 내적 갈등, 겨울이의 가슴 아픈 짝사랑, 이런 감정들이 결국 시즌1에서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었다. 시즌2에서는 그 커플이 얼마나 더 단단해져 가느냐에 초점을 맞췄다. 둘이 서로에게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지, 그리고 그 좋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기대일 때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운지를 겨울정원 커플을 통해 많이 보여드리고 싶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12화에서 겨울이가 고민하는 정원이의 등을 토닥여주는 장면이 그래서 가장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

 

로맨스가 완성되는 과정만으로 봤을 때 시즌1의 가장 큰 축이 겨울정원이었다면 시즌2의 큰 축은 석형, 민하였다. 어찌보면 사실은 시즌1부터 차근히 쌓여져 온 러브라인이다. 석형이 가진 여러 개인사에 대한 고민이 본인 스스로 해결되어야만 사랑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 이 러브라인의 가장 큰 얼개였다. 시즌1에서는 그런 부분들이 충분히 쌓이고 시즌2에서는 그걸 극복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려고 했다. 얼개만 보면 무거운 느낌일 수도 있는데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둘의 모습은 귀엽고 사랑스럽길 바랬다. 어쩌면 큰 틀은 묵직해 보일 수 있지만 결국은 가장 ‘요즘 멜로’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던 커플이다. 사실 두 배우 모두 멜로 연기는 처음이기도 하고 여타 다른 멜로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점들이 많다보니 보시는 분들이 얼마나 좋아해 줄까 하는 고민도 있었는데 너무 큰 관심과 사랑을 받게 돼서 저도 그렇고 배우들도 마찬가지고 너무 감사하고 신기했다.

 

준완이와 익순이 같은 경우는 어찌보면 곰곰 커플과는 반대였다. 시작이나 연애 중간중간의 느낌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느낌이었지만 전체 얼개는 묵직해야 했다. 해서 시즌1이 재미있으면서 설레는 멜로였다면 시즌2는 정통 멜로의 색깔로 갔다. 정말 실제 그럴 법한 연인 간의 갈등들, 장거리 연애에서 나올 수 있을 법한 고민들, 서로의 직업적인 상황들 때문에 갖게 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엇갈림과 오해, 이별,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절하게 이어나가는 둘의 마음들이 잘 보여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씬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경호와 곽선영 배우가 너무 연기를 잘해줬다. 이 짧은 씬들을 어떻게 저렇게 절절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잘 표현해줬다. 시즌1에서는 둘이 서기만 해도 로맨스 코미디가 뚝딱 만들어졌다면 시즌2에서는 둘만 있으면 정통 멜로가 뚝딱 만들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둘이 잘 만났다 싶은 생각이 자주 들었던 커플이었다.

 

Q10. 이번 시즌2에서 담지 못해 아쉬운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A. 환자와 보호자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애초에 기획했던 것은 정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의사들의 이야기가 주된 축이었기 때문에 할 얘기, 에피소드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마치 우리 일상이 오늘 지나면 또 내일의 이야기가 있고, 내일 지나면 모레 이야기가 있듯이 구구즈의 일상도 무궁무진할 것이다. 다만 시즌제를 처음 제작하면서 쌓인 이런저런 고민들과 피로감들이 많다보니 그 이야기를 다시금 이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Q11. 주연배우들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병원이라는 기관을 통해서 자극적이지 않은, 따뜻한 이야기가 이어지며 매회 힐링을 안겼습니다. 인상깊었던 환자 에피소드가 있답면 그 이유를 부탁드립니다. 또 자극적일 수도 있는 병원 이야기를 따뜻하게만 그린 이유도 궁금합니다.

 

A. 개인적으로 시즌2에서 가장 좋았던 에피소드는 이경미 환자의 에피소드다. 준완이가 sns 통해서 외롭지 않게 만들어 준 지점이 의사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마음을 쓴 에피소드라서 더 신선했고, 다른 에피소드들과도 잘 맞물려서 기분좋은 반전으로 꾸려져서 더 만족스러웠다. 처연하게 가슴 울리는 에피가 아니면서도 기분 좋고 가슴 뭉클해지는 느낌이 있었어서 그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판타지이기도 하다. 세상 모두가 다 좋은 사람이면 좋겠다는 판타지. 그래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저 좋은 사람들 사이에,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이야기를 만들려 한다. 그걸 판타지라고 불러도 좋다. 그저 보면서 마음이 편해지고 위로받는 기분이었으면 한다. 사실 공유 같은 도깨비도 없고 박보검 같은 남자친구도 없다. 어차피 모든 드라마가 판타지라면 그나마 좋은 사람들의 세상은 그나마 더 현실에 가까운 판타지 아닐까 싶다. 웬만한 설정으로는 일말의 화제성도 얻지 못하는 시대이다 보니 드라마는 점점 독해지고 있다. 보다 자극적이고 보다 쇼킹하고 보다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의 틈바구니 속에 이런 착한 판타지 하나쯤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Q12. 전작 '응답하라 1988'에서 '시계 4시 33분'이라는 감독님만의 연출 코드가 있어서 애청자들이 발견하는 재미가 소소했습니다. '슬의생' 시리즈에 아직 팬들이 발견하지 못했거나, 발견한 연출적 비밀 코드(?)가 있을까요?

 

A. 사실은 현장의 제작진끼리도 만드는 재미가 필요하다. 그 일환으로 종종 그런 숨겨진 코드들을 만들어 넣고는 하는데 극의 흐름상 중요한 부분들을 깔아두는 건 아니기 때문에 사실 큰 의미는 없다. 다만 제 드라마를 보시면서 보이는게 전부가 아니다, 이면이 있다 라고 생각해주시는 게 너무 감사하다. 그걸 의도한건 아니었는데 어쨌든 재밌다. 표면적으로 흐르는 이야기 뿐만 아니라 한꺼풀 벗겨 보면 또다른 이면이 있다고 봐주시는 건 콘텐츠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너무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저는 만들어 내놓을 뿐이지 그걸 어떻게 바라보고 즐길 것인지는 보시는 분들의 몫이기 때문에 제가 끼어들어서 이건 맞고, 이건 아니라고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보고 싶으신 대로 보는게 맞고 그게 보시는 분들의 권리이기도 하다. 제가 관여할 지점이 아닌 것 같고 그저 그렇게 다양한 시각으로 봐주시는 게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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