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신의 철길 따라 43화] 예전의 열차 운행허가증 통표(通票)

편집국 / 기사승인 : 2022-01-01 17: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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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통표폐색방식이 당시 이리역(익산)화약 적재 열차 폭발사고에 여객 사상 사고 피하게 하기도
▲초창기 통표

 

[하비엔=편집국] 처음 단선철도가 부설되고 열차를 운행하기 위해서는 역과 역 사이에 하나의 열차만 운행되어야 하며, 2개 열차가 마주 운행되면 충돌하게 된다. 

 

같은 방향으로 2개의 열차가 운행되는 경우 뒤에 오던 열차가 앞에 가는 열차를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역과 역 사이에는 반드시 1개 열차만 운행케 하여 사고를 방지하는 방법으로 운행허가증을 소지한 열차만 운행케 하는 제도에서 사용되는 열차 운행허가증을 ‘통표(通票 : tablet : タブレツト)’라 했다. 

 

예전의 이 통표와 관련된 이야기를 간추려 본다.

최초 철도인 경인선의 경우 현재 통용되는 100원짜리 동전 크기의 작은 동판에 京仁線(경인선)이란 글자를 새겼고, 1905년 개통된 경부선은 약간 규격이 큰 것에 京釜線(경부선)이라는 글자를 새겨넣었으며, 1906년 개통된 용산~신의주 간 경의선에 사용된 통표에는 임시군용철도감부 마크를 새겨넣어 사용하였고, 이들 5개의 통표는 철도박물관에 보존 전시되고 있으며, 2008년 ‘대한제국기 철도통표’라는 이름으로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인천~월미도 간 철도선로와 임시군용철도감부 통행인감

 

경성~의주 간 군용철도 부설을 위하여 1904년 2월 설치된 임시군용철도감부는 1904년 7월 말부터 군사상 목적으로 인천역과 월미도 사이에 교량을 가설하고, 철도선로 부설을 시작하여 1906년 8월 준공한 선로를 운행하는 열차에 대한 운행허가증으로 사용했던 ‘월미도~교량 통행인감’이라는 이름의 통표는 나무로 만든 4~6㎝ 크기의 표찰로 현재 인천시립박물관에 보존되어있다. 

 

▲통표폐색기


 


그 후 1908년 4월 1일 철도신호 규정을 제정하고, 경부선부터 장내・원방・출발・측선・입환신호기 등 5종류의 상치신호기 설치와 각 역에 통표폐색기를 설치하여 열차 운행은 역과 역 간에 설치된 전용 통표폐색기를 이용하여 상호 열차 운행을 협의한 후 협력하여 열차를 출발시킬 역에서 통표를 인출하여 통표휴대기에 담아 기관사에게 주면 기관사는 다음 역에 도착하여 가져온 통표를 반납하고, 또 다음 역으로 갈 수 있는 통표를 받아 운행했으며, 도착 기관사에게서 받은 통표는 출발역 쪽 통표폐색기에 수납하여 선로를 개통시킨 후 다음 운행할 열차를 협의하는 방법이 이용되었다.
▲각종 통표와 통표 휴대기

 

통표폐색방식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모든 열차가 운행 중 모든 역에 정차하여 통표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고, 빠른 속도로 통과하는 역에서도 통표를 주고받아야 하므로, 이 과정에서 달리는 열차에 부딪혀 사망 또는 부상 사고를 보도했던 당시 신문에는 1928년 1월 1일 경동선 반야월역장 사망, 1930년 7월 경부선 황간역장 사망, 1932년 12월 25일 경의선 토성역장 중상 치료 중 27일 사망했다. 

▲ 통표를 주고받는 모습

1934년 6월 경의선 흑교역 조역(부역장) 이병선씨는 통표수수기가 파손되어 전속력으로 달리는 열차 기관사에게 손으로 건네다가 열차에 말려들어 사망, 1936년 12월 경의선 이목역에서 기관차승무원이 통표를 받으려고 몸을 밖으로 내밀다가 건축물에 부딪혀 추락하여 부상당한 사고 등을 찾아볼 수 있었으나 더 많은 사고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많았던 인명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기록을 보도한 당시 신문에는 1924년 용산보선사무소 이와모토(岩本) 조역이 통표수수기를 고안하여 약 1개월에 걸친 현장시험을 통해 문제점을 개선하여 설치한다고 하였으나 결과가 없고, 1929년 철도국 공무과 아사이(淺井淺治郞)기수가 1921년부터 연구하여 만든 통표 수수기의 현장시험(사진)을 거쳐 설치한다고 했으나 역시 결과가 없었다. 

 

1932년 평양~정주 간 일부역에 설치하여 야간 특급 열차에만 사용한다 했으나 이 또한 최총 작품은 아니었고, 1934년 경인선에 개량된 통표수수기를 설치한다는 보도가 있었으며, 1938년 원산철도사무소 기공 이성호씨가 발명한 자동 통표수접기를 전조선 각역에 설치한다는 보도로 보아 최종적으로 필자 근무 시에도 사용되던 통표수여기와 통표수취기가 아닌가 추정된다. 

▲ 통표수여기와 통표수취기

 

이렇게 간단한 형태의 통표수여기와 통표수취기가 탄생하기까지 많은 철도인 들이 생명을 잃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많은 철도인 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은 1963년부터 2001년까지 관련 업무를 담당한 필자도 이번 조사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통표 사용과정
통표 사용과정은 ① 통표폐색기의 전화기를 이용하여 상대역과 열차 운행을 협의하고, ② 통표를 인출하여, ③ 통표 수여기에 꽂아두면, ④ 도착 또는 통과하는 열차 기관차 승무원이 수취해가고, ⑤ 다음 역에 도착 또는 통과하는 열차가 통표 수여기에 반납하여, 이를 통표폐색기에 수납함으로서 구간 선로가 개통되는 것이다.

통표폐색방식이 사용되던 1977년 11월 11일 군산선 임피역을 출발하여 이리(익산)역으로 향하던 기관사가 통표 수취를 깜박 잊고 가다가 운행 중인 열차를 정지하고 퇴행하여 통표를 수취한 후 운행하여 열차가 지연되어, 당시 이리역 화약 적재 열차의 폭발사고 직후에 도착하게 되어, 정시로 운행되었으면 많은 여객의 사상 사고를 피할 수 없었을 텐데, 통표로 인한 열차 지연이 많은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놓았던 옛일이 새삼 되새겨진다.

 

 

알립니다. 그동안 독자 분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손길신의 철길 따라'는 2022년 1월 중 손길신의 '기차로, 세계로' 라는 타이틀로 더욱 알차고 넓어진 이야기로 새롭게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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