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신의 철길 따라 24화] 6.25전쟁과 철도교량

  • 편집국 / 2021-01-18 12:16:40

[하비엔=편집국] 철도교량은 전쟁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지만 적군의 사용을 저지하기 위해 중점적으로 파괴되기도 한다. 6.25전쟁 중 아군과 적군에 의해 파괴되었던 교량의 이야기를 정리해본다. 

▲ 한강철교 3개

한강에는 1900년 준공된 철교A와 1912년의 B교, 1944년 준공된 C교 등 3개의 단선철도교량에 열차운행 중 1950년 6월25일 북한군의 남침이 시작되면서 6월28일 한강인도교가 남침 저지를 위한 국군의 작전에 의해 폭파되면서 많은 피난민이 희생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 한강철교 폭파

이어 북한군 남침 지연을 위해 미 공군은 7월 1일부터 3일에 걸쳐 3개의 철교를 폭파했으며, 1952년 7월 A교를 가 복구한 후 1957년 C교, 1969년 B교를 복구하였으며, 1995년 복선철교 D교를 추가 건설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A, B, C교는 2006년 등록문화재 250호로 등록되었다.
▲경부선 금강철교(신탄진철교)


갑작스런 남침으로 밀리던 유엔군은 적군의 남침 지연작전으로 1950년 7월12일 도로교량인 금강철교(등록문화재 233호)와 함께 1904년 경부선 부설 시 매포~신탄진 간에 건설된 경부선 금강철교(신탄진철교)를 폭파하였다.  

▲구 왜관철교/현 왜관철교/도로교량

 

이어서 1950년 8월 3일 낙동강이 아군의 최후 방어선이 되면서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축조된 후 경부선 복선화에 따라 인도교로 사용되던 구 왜관철교와 경부선 복선화로 상류 40m지점에 1939년 새로 부설한 상행선 단선철교와 1944년 개통된 하행선 단선철교 중 상행선 신 왜관철교를 폭파하였다. 

▲ ‘호국의 다리’ 구 왜관철교

9월에는 인천상륙작전으로 적군이 퇴각함에 따라 10월 가 복구를 거쳐 1952년 복구되었고, 구 왜관철교는 1993년 ‘호국의 다리’로 명명된 후 2006년등록문화재 406호로 등록되었다. 

▲임진강철교(좌), 우측 하행선 미 복구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이후 아군은 10월 2일 38선을 돌파하여 다음날 고성에 도달하자 북한군은 후퇴하면서 10월 4일 임진강철교를 폭파하였다(2017년 9월 8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의하면 폭파에 참여한 북한군 5군단 공병분대장에게서 들은 사실로 당시 임진강철교에는 후퇴하는 북한군과 전쟁 중 북한군을 도왔다가 보복이 두려워 북쪽으로 피신하는 사람, 그리고 진격하는 국군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동 중이었으나 이를 막아야 된다는 상급자의 명령으로 교량을 폭파할 수밖에 없었다는 증언을 발표한바 있다). 

▲ 교각회전으로 선박 통과하는 압록강철교

임진강철교는 1905년 4월28일 단선철교로 준공된 후 1938년부터 시작된 경의선 복선 공사 시 상,하행선 2개였지만 폭파된 후 상행선만 복구되어 있다.


▲압록강철교(좌)와 압록강단교(우)

1950년 9월28일 서울을 수복하고 10월 평양까지 탈환했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면서 미 공군은 11월 8일 압록강철교를 전쟁 당사국이 아닌 중국 국경선을 넘지 않는 범위내의 북한쪽 만을 폭파하였다. 

 

압록강철교는 선박통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교량건설을 반대하는 미국과 영국의 주장에 따라 중간 교각을 선박 통행 시 회전시키는 교량으로 설계하여, 1909년 9월 착공, 1911년10월 말 준공한 제1 단선철도교량과 1943년 5월 경의선 복선화와 함께 준공된 제2 복선철도교량이 운용 중이었으며, 폭파된 교량 중 제2 복선철도교량만을 복구하여 1개 선로만을 복구하고, 1개 선로는 철거하고 도로로 사용 중이며, 제1 단선철도교는 폭파된 그대로를 압록강단교라는 이름의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

▲최초의 대동강 철도교량인 목교(木橋)

중국인민지원군이 개입함에 따라 유엔군은 그들의 남하를 지연시키기 위하여 1950년12월 4일 대동강철교를 폭파하였다. 

 

평양역과 대동강역 사이에 있는 대동강 철교는 1905년 철교(鐵橋) 아닌 두 개의 목교(木橋)였으나 1909년 철교로 개량한 재래교가 있었지만 경의선 복선화에 따라 1938년부터 1942년에 걸쳐 새로운 복선철도 교량으로 부설하여 사용되던 중 폭파된 것이다. 

▲ Max Desfor의 대동강철교

당시 AP통신 종군기자 Max Desfor(2018년 사망)가 폭파된 대동강철교를 아슬아슬하게 넘어가고 있는 수 백명의 피난민들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으로 1951년 퓰리처상을 받아 유명해진 그는  ‘죽음의 위험에서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치는 순간에 현장 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모험 중의 모험 이었다’면서 ‘손가락이 얼어붙어 갔지만, 철교에 피난민들이 개미 떼처럼 달라붙어 있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하고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고 회고하였다.

▲한국공군의 승호리철교 폭파

1952년 1월15일 우리 공군에 의하여 폭파된 승호리철교는 대동강연안지역 탄광을 개발하면서 1909년 평양시 대동강과 평안남도 강동군 승호읍 사이에 부설된 평양탄광선 철도의 미림역과 승호리역 간의 철도교량이다. 

 

평양탄광선은 1911년부터 여객운송도 함께 하면서 1944년 승호리~북창 간의 서선선과 합병되었고, 채굴된 석탄이 중국으로 수출되기도 한 철도노선으로 1951년 12월 유엔군은 협상을 통해 전쟁을 확대하지 않으려 했지만 북한과 중공군은 중국으로부터 군사물자와 장비를 경의선과 만포선을 통해 중동부 전선으로 보급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하여 승호리 철교를 폭파했다. 

▲ 한국공군의 승호리철교 폭파장면
 

하지만 하류 방향으로 우회하는 새로운 철교를 가설하고, 주위에 밀집된 대공방어망을 구축하여, 미 공군은 이 철교 폭파를 위해 500회 이상 출격했으나 실패하고 한국공군에게 인계되어 한국공군이 폭파에 성공한 역사의 기록이 전해지는 철도교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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