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신의 철길 따라 39화] 경인철도 개통 전부터 운행이 시작된 수압궤도(인차철도) 이야기

편집국 / 기사승인 : 2021-09-27 11: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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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수압궤도

 

[하비엔=편집국] 우리 역사기록에는 전해진 내용이 없으나 1898년 1월 29일 뉴욕에서 발행된 Harper’s Weekly에 ‘서울~인천 간 임시 레일을 깔고 첫 여행을 즐기는 모습’이라는 설명과 함께 수압궤도를 타고 이동하는 사진을 실어 1899년 우리나라 최초의 경인철도 가 개통되기 전 수압궤도가 운행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평양역~중성교 간(1907.1.17.~1917.10.10.운행)

 

일명 인차철도(人車鐵道)라고도 불렸던 수압궤도(手押軌道)의 최초 기록은 1929년 10월 조선총독부철도국이 발행한 ‘조선철도사’ 1권에 의하면 1906년 8월 11일 평양시가철도합자회사가 평양부(平壤府 : 평양시)내에 수압식궤도의 부설을 허가받아 1907년 1월 17일 영업을 개시했다는 기록과 1912년 3월 31일 매일신보의 평양역부터 중성교(中城橋)까지 운행되던 인차철도가 태화정 도로 보수공사로 1911년 9월부터 단축 운행하고 있으나 6월부터는 중성교까지 정상 운행될 것이라는 보도 내용에서 부설구간이 평양역~중성교 간임을 확인할 수 있다. 

 

1915년 3월 6일 매일신보에 의하면 인차철도 이용률이 반 이하로 떨어져 월 600~700만 원의 수입이 300만 원으로 줄었으며, 1917년 10월 10일 영업이 폐지된 후 1923년 5월 20일부터는 전기궤도인 전차가 운행되었다. 

▲ 왜관지도

 


대구 화원 나루에서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칠곡군 중앙으로 연결되어 임호정 나루터인 왜관진(倭館津)과 연결되며, 왜관읍 금산리 강창에 창고가 있어 경상도 내의 중요한 상품 집산지로 수운을 이용하여 조세와 군량을 수송하고 왜국과 무역도 하였는데, 1905년 경부선 왜관역이 낙동강 건너 내륙 쪽에 설치됨에 따라 왜관진이 있는 낙동강안(岸) 부터 왜관역까지 1.1㎞의 수압궤도를 부설하여 1912년 9월 18일부터 왜관궤도의 운수영업이 시작된 후 1920년대 이후 자동차 교통의 발달로 효율성이 떨어져, 왜관궤도는 1935년 휴업에 이어 1937년 폐지되었다.

전라선은 애당초 1912년 5월 농산물 운반을 위하여 만경강에서 부용까지 수압궤도 부설 신청이 허가되지 않자 이리~전주 간 협궤 증기철도로 변경하여 1913년 1월 허가를 받은 노선이다. 

 

1912년 1월 영업이 시작된 호남선 김제역의 물동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자 일본인들은 김제궤도주식회사를 설립하고 1914년 10월 13일 수압궤도 부설 허가를 받아 1915년 7월 1일부터 김제역~동진강 간 8.14마일(13㎞)에 궤간 2피트(0.61m)의 궤도를 부설하고, 4명 승차용 궤도차 9대와 화물용 궤도차 16대로 운수영업을 시작하여 연간 여객 14,000여 명, 화물 18,000여 톤을 실어 날랐으나 1927년 이후 우마차나 자동차 등 통행에 지장이 있어 궤도철폐 시민운동이 지속되면서 1929년 폐지되었다.

조선총독부 관보(제542, 690호)에 의하면 함경북도는 1914년 4월 30일 경성(鏡城)~나남(羅南) 간 5마일(8㎞)의 수압궤도부설 허가를 받아 11월 11일부터 운수업무가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경남궤도주식회사가 1913년 10월 15일 진주~선진 간 수압궤도 부설 허가를 받았지만 실행하지 않아 1916년 10월 15일 실효된 기록과 1916년 9월 28일 함흥탄관주식회사가 함흥~장풍 간 16.4마일(26.4㎞)의 수압궤도 부설 허가(관보 1256호)사항과 1917년 3월 30일 충남 청양광산에 수압궤도 1.18마일(1.9㎞) 부설을 허가한(관보 1401호)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함경남도 함경선 영무역(현 평라선 풍어역)

강경궤도는 1919년 11월 11일 강경역부터 강경읍내까지 1마일(1.6㎞) 궤간 2피트(0.61m)의 수압궤도 부설을 허가받아 1921년 6월 3일부터 여객과 화물 운수영업을 시작하면서, 어른 편도 15전, 소아 8전, 4세 이하의 유아는 무료 취급을 하다가(1921.06.12. 동아일보) 1930년 4월 7일 영업을 폐지하였으며(1930.04.12. 관보980호). 어획량이 많아 주민생활이 부유하고 행복해져 마을 이름을 풍어동으로 역명을 풍어역으로 바꾼 평라선 풍어역(豊漁驛)은 옛 함경선 영무역(靈武驛)으로 많은 어획량을 운반할 교통수단이 없어 이곳 박장순씨와 서울 최순정씨가 1925년 7월 영무역~육대리 간 2척(0.61m) 궤간의 2마일(3.2㎞) 선로를 부설하여 인력(人力) 또는 우력(牛力)을 이용한 궤도부설 승인을 받은 후 1928년 12월부터 화물전용 수압궤도 운영을 시작한 내용이 당시 관보와 신문에 보도되었다.

▲1929.10.05일 관보

 

도쿄의 야마모토(山本政敏)등 실업가들은 1927년 5월 전라남도의 제주도 순환 120마일(193.1㎞)에 궤간 2피트(0.61.m)의 수압궤도 부설을 신청한 후 1928년 11월 기공식을 하며, 1기 공사는 협제←제주→김녕 간, 2기 공사는 서귀포←협제 및 김녕→성산포 간, 3기 공사는 서귀포~성산포 간 연결하여 1930년 준공을 목표로 공사를 시작하였으며, 여객용 궤도차 4종과 화물용 궤도차를 운행할 계획이었다. 

▲ 제주궤도노선

 

1마일 당 여객운임은 4인승 : 3전, 3인승 : 4전, 2인승 : 4전5리, 1인승 : 6전으로 한다고 하여, 4인승의 제주 일주 운임이 4원 미만으로 당시 운행 중이던 자동차 일주 요금 12원 20전에 비하면 1/3 이하로 도민의 기대와 제주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1기 공사 구간인 제주~협제 간 19.7마일(31.7㎞), 제주~김녕 간 14.8마일(23.8㎞)과 제주~제주읍내 간 1.3㎞ 등 총 56.8㎞를 개통하여 1929년 9.6일부터 운수영업을 시작한 후 각종 사고 등으로 문제가 잦아 1931년 9월 16일자로 폐지되었다.


▲용진교 입구 기념비의 전, 후

 

제주궤도 관련 생생한 기록은 1924년생인 故 김석종님의 「포구의 악동들」에서 “거기에는 도로코가 대기하고 있었고, 당시 교통수단은 우마차 외 도로코(수압궤도차) 밖에 없었으며, 동쪽으로 김녕, 서쪽으로 한림까지 설치되어 모양은 탄광차와 같고, 두 개의 지붕이 있는 앞 차량에는 사람이 타고, 지붕 없는 뒤 차량은 화물용이지만 사람이 많으면 뒤 칸에도 탔으며, 우리 가족은 겨우 뒤 칸에 올라탔다. 


비행기 구경 가는 사람들이 도로코 역전으로 몰려와 도로코에 타고 관덕정 지나 서문을 거쳐 향교까지 기분 좋게 달렸으며, 한천교까지 동산길이어서 전부 내리고, 앞에서 조종하던 사람이 내려와 뒤에서 동산 위까지 모두 달려들어 같이 미니 쉽게 올라가 모두 또 승차하여 달렸다.”라는 내용으로 당시의 풍경이 잘 소개되었다. 

 

2008년 설치된 용진교 입구 기념비에 있던 ‘수압궤도’ 내용을 2020년 삭제하고 다시 만든 것을 발견한 필자가 관계처에 수정을 건의했으나 일제의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은 주민들 뜻이라는 회신에 아쉬움만 남길 수밖에 없었다. 

 

수압궤도 관련 남아있는 마지막 기록은 강릉궤도가 1930년 부설 허가를 받았으나 공사를 하지 않아 1933년 실효된 관보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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