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신의 철길 따라 ⑳] 협궤철도 이야기

편집국 / 기사승인 : 2020-11-23 11: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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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3.9.관보- 경동철도설립,수여선
[하비엔=편집국] 우리나라 철도선로는 1,435㎜의 표준궤간과 762㎜의 협궤궤간이 있었으며, 1067㎜의 궤간은 호남선 학교역과 함평읍내 구간을 운행했던 함평궤도와 서울, 부산에서 운행되었던 전차는 철도 아닌 궤도로 분류되어, 협궤철도로는 762㎜궤간의 철도만 운행되었다.

 

최초의 협궤철도는 대한제국시절인 1909년 6월29일 부산궤도주식회사가 부산진~동래온천 간 증기철도부설 허가를 받고, 12월19일 약 10㎞의 전 구간을 개통시킨 사설철도가 최초의 협궤철도였으며, 이어서 1914년11월17일 역시 사설철도회사인 전북경편철도회사가 이리(지금의 익산)~전주 간 25.3㎞를 개통시켰다.

그 다음 조선중앙철도회사가 1917년12월24일 대구~하양 간에 이어 1921년10월 울산까지 개통시킨 경동선, 1923년 6월10일 함흥~오로 간 개통에 이어 1926년10월 신흥까지 신흥철도회사가 개통시킨 신흥선과 함께 조선철도주식회사가 오로~상통 간 개통시킨 함남선 지선구간이 있었으며, 1934년 신흥철도주식회사가 개통시킨 상통~사수 간의 장진선, 1940년대 개통된 강진~량림 간의 강계선, 북신현~삼산 간의 운산선, 1944년 완공된 백암~무산 간의 백무선 등이 해방 전에 개통되었던 협궤철도들이며, 이들 중 가장 늦게까지 운행되어 아직도 일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수여선과 수인선 이야기를 정리해본다.

수여선과 수인선은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가 부설한 협궤철도로 어떤 연구서적은 최초 수여선은 지형과 철도운송목적상 협궤철도가 적합하여 부설하였다하나 1920.3.9.일 관보에 의하면 3월 3일자로 회사설립 허가와 동시에 수원~여주 간 43.1마일(69.4㎞)에 증기를 동력으로 하는 4척8촌반(1,435㎜)의 표준궤간철도 부설이 허가되었음을 알 수 있다. 

 

회사 설립 후 내부 불협화로 경영진의 교체 등 많은 문제를 겪은 후 1928년 자금부족으로 궤간 762㎜의 협궤철도로 변경하여 1929년 2월 착공하여 1930년12월 수원~이천 간 53.1㎞를 개통시킨 후 1931년12월 이천~여주 간 20.3㎞ 준공에 따라 수원~본수원(1948년 화성으로 개칭)~원천~신갈~어정~삼가~용인~마평~양지~제일~오천~표교~유산~이천~무촌~죽당~매류~신대~여주 간 73.4㎞가 개통되었다. 

▲ 무개화차에 승차하는 여객의 모습

해방 후 버스가 운행될 때 까지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해산물과 소금, 석유 등 생활필수품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하였기에 속도도 느리지만 기관차 힘도 약해 고갯길에서는 내려서 걸어야했다.  

 

용인 메주고개(일면 멱주고개)를 오를 때는 멀리서부터 달린 탄력으로 오르다가 못 오르면 후진했다가 다시 오르는 일을 수차례 반복하여 겨우 오르는 일이 다반사였으며, 화물수송 위주로 운행되어 화차는 물론 지붕도 없는 무개화차에 승차하는 경우가 허다했으며, 여객용 기동차가 운행할 때는 일반 객차보다 요금이 10배 이상 비싸서 타는 사람이 거의 없어 특별한 때만 운행되어 서민들에게는 신기한 구경거리였지만 수여선 철도는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고마운 열차였다고 한다.  

▲화성역 구내의 6.25전쟁 중 파손된 차량

수여선의 기능은 해방이후 1960년대까지 이 지역의 필수 교통수단으로 역할을 했지만 철도운영 측면에서는 만성 적자노선이었다. 

 

1960년대 들어 버스가 운행되기 시작했지만 운임이 기차보다 2배 이상 비싸서 서민들은 철도를 선호하였지만 도로가 포장되고, 버스운행이 확대 개선되면서, 화물자동차 운행으로 철도수송화물이 전가되면서 철도운영 적자폭이 증가함에 따라 1972년 3월말 수여선 철도가 폐지되자 버스운송이 승객수요를 충당하지 못해 한동안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 1953년 소금적재 화차(상)와 소금운반(하)

 

수인선은 1935년 9월23일 착공하여 1937년 8월 6일 수원~고색~오목~어천~야목~빈정~일리~성두~원곡~신길~군자~소래~유지전~논현~남동~연수~문학~송도~인천항 간 개통된 거리 52㎞, 궤간 762㎜의 협궤철도로 일부 사람들은 일제가 소금수탈을 위해 부설한 철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1928년10월28일자 동아일보에 의하면 조선경동철도사가 1928년 제1기 공사인 수원~여주 간 수여선을 협궤로 변경하여 착공을 앞두고 제2기 공사로 수원~인천 간 수인선 부설계획을 발표한 후, 착공당시 1935.10.03.일 동아일보에 의하면 수인선이 개통되면 수인·수여선을 경유하여 인천항과 강원도 오지 간의 교통소통이 가능해지며, 수인선 연선의 염전 확장계획에도 서광이 비쳐 조선의 소금 자급에도 큰 도움이 있으리라는 내용으로 보아 잘못된 설명이라는 생각이다. 

▲1988년 전철 전동차와 협궤열차(안산역) 
1960년대 초 필자가 수인선에서 근무할 당시도 김장철이 가까워지면 전국 소비량의 70%를 생산한다는 이곳의 소금을 경부·호남선 등 열차에 환적 할 수 있는 수원역으로 수송하기 위해 밤새 화물열차가 운행되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수인선은 1988년10월25일 전철 1호선 금정역에서 수인선 원곡역을 이전하여 역명을 변경한 안산역까지 안산선 전철이 개통되면서 광역전철과 안산선과 협궤 수인선이 함께 운영되는 중 1994년 9월 수인선 운행구간이 수원역~한대앞역(수인선 일리역) 간으로 단축되어 운행되다가 좁고, 느리고, 불편하고, 낡아버린 협궤철도는 더 이상 설자리를 잃고 1965년12월31일 마지막열차 운행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 1995.12.31.마지막 협궤열차

 

사라진 협궤철도 수인선 노선은 지난 9월12일 수원~오이도 간 광역전철이 개통되면서 다시 회생했으며, 2024년을 목표로 추진 중인 인천을 잇는 고속철도노선이 개통될 경우 협궤철도노선이 광역전철을 거쳐 고속철도노선으로 거듭나는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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