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신의 철길따라⑮ ]국철보다 운임이 배가 비쌌던 경북선

편집국 / 기사승인 : 2020-10-19 18: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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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엔=편집국] 1919년 조선철도산업을 계획하고(1919.8.10.매일신보), 1920년 3월 조선산업철도주식회사를 설립(1920.3.2.관보2264호)를 설립한 후 부설승인을 받은 김천~안동 간 철도 부설공사 착공을 1년간 연기승인을 받고(1921.4.14.동아일보) 1922년 토지매수에 착수하여(1922.3.9. 동아일보), 4월15일부터 공사를 착수하였다.  

 

1922년12월14일 매일신보에 의하면 김천~상주 간 공사완료에 앞서 상주~예천 간 공사개시를 신청하였고, 1923년 9월 1일 조선산업철도를 포함한 조선중앙철도, 서선식산철도, 남조선철도, 조선삼림철도, 양강척림철도 등 6개 사설 철도 업체가 조선철도주식회사로 합병 되면서 공사는 조선철도주식회사에서 맡게 되었다.(1923.9.3.동아일보) 

▲19240929 동아-경북선 개통과 자동차임 저감


1924년9월29일자 동아일보에 의하면 1924년10월 1일 김천~상주 간 개통되는 철도 운행시간 1시간35분 및 운임 1원15전에 대비하여 자동차업계는 운행시간을 55분으로 단축하고, 종전 2원40전 받던 차비를 거의 반액에 가까운 1원50전으로 할인하겠다는 보도는 당시 철도 개통이 가져온 사회변화를 실감케 한다. 철도운영자 또한 1924년12월25일 추가 개통되는 상주~점촌 간에 대하여 1924년12월25일부터 27일까지는 상주~점촌간의 운임 3할을 할인한다는 1924년12월20일자 동아일보 보도다.

1926년2월14일자 동아일보에 의하면 예천을 중심으로 김천, 상주, 함창, 용궁, 안동, 봉화, 영주등지의 대표자 90여명이 모여 경북선 연장 촉구대회를 개최하고 대표자를 선정하여 11월27일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조선철도주식회사 주주총회에 파견(1926.11.7.동아일보)하는 등의 노력으로 점촌~예천 간 연장공사 확답을 받았으며(1927.1.25.동아일보), 1927년 6월27일부터 토지매수를 시작하여 1928년11월 1일 점촌~예천 구간이 개통되었는데 경북선의 경우 특이한 문제는 기차운임 문제가 대두되고 있지만 1928년 1월21일자 동아일보에 의하면 조선철도회사는 경북선의 배양기관(培養機關)으로 자본금 120만원을 투입하여 자동차회사 설립까지 결정하였다.


1929년12월3일 동아일보에 의하면 김천~예천 간 여객운임은 할인한다는 했으나 화물운임은 본선보다 배 이상 비싸서 경북 7개 군이 연합하여 경북선운임인하 기성회를 조직하여 활동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관보-예천 안동 간 영업개시

운임문제는 예천~안동 간 개통을 앞두고 철도회사는 김천~안동 간 화물운임은 저감하지만 김천~예천 구간은 현재의 운임을 적용한다는 발표에 예천상우구락부는 맹렬히 운임저감 운동 결의를 했다. 

 

1931년 3월16일에는 예천에 있는 경북선 공사장 인부 100여명이 임금인상 요구 동맹파업을 하였고(1931.3.20.동아일보), 1931년 9월20일에는 운임저감 예천시민대회를 개최하는 등(1931.9.23.동아일보) 운동이 지속되는 가운데 1931년10월16일 예천~경북안동(1965년 단둥丹東으로 개명한 역의 당시 이름 安東과 초창기 경북안동역 구별하여 경북안동이라 함) 간 개통으로 김천~안동 간 118.1㎞에 김천, 아천, 옥산, 청리, 상주, 백원, 양정, 함창, 점촌, 용궁, 개포, 유천, 예천, 고평, 호명, 경북풍산, 명동, 경북안동 등 18개역 전 구간이 개통(1931.10.21.관보)되었다.
▲경북 안동역 

운임저감 운동은 지속되었지만 실현시키지 못하였고, 1939년 철도국이 사설철도인 경북선 매입을 결정하고 1940년 매수함에 따라 3월부터 국철로 운영이 개시되면서야 기차운임은 종전 1㎞당 3등 3전1리가 1전5리5모로, 2등 4전3리가 2전8리로 사철로 운영될 때의 약 반액으로 인하되었다.
▲1944년 영업선 철거관련 극비문서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중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태평양전쟁은 한국철도에도 영향을 미쳐 물자부족에 시달리던 일제는 1944년 운행 중인 철도노선 중 전쟁에 필수적이지 않은 선로를 철거하여 전쟁에 긴급한 노선의 증설과 보수에 사용하고자 세운 극비계획 중에 경북선 일부가 포함되어 1944년10월 1일 점촌~안동 간 57.8㎞의 선로가 철거되었다.

해방 후 1945년12월26일자 동아일보는 일제가 철거한 철도노선을 복구하기 위하여 기술진이 현지조사를 하고 있어 명년 안으로는 복구시킬 예정이라는 보도를 하였고, 재조선미육군사령부군정청은 1946년 5월17일 군정법령 제75호에 의거 모든 사설철도를 국유화되었으며, 당시 교통부의 전신인 운수부의 민희식 초대 운수부장은 1947년 4월18일 기자회견에서 경북선 복구는 예산형편상 어렵다 했으며, 1949년 7월 경북안동역 명칭을 안동역으로 변경하였고, 6.25전쟁 발발 후 1952년10월11일부터 김천~점촌 간 운행이 재개되었다.
▲경북선 노선도
경북선의 복구는 1961년 4.19후 경제개발5개년계획으로 삼척지방 영주일대로부터 개발되는 자원과 문경, 은성지방에서 개발되는 자원을 영암선, 중앙선, 경북선을 직결시켜 운반할 수 있는 산업선을 개발하기 위하여 옛 점촌~안동 구간 대신 점촌~영주 구간으로 변경하여 1962년 5월 9일 영주에서 기공식을 개최(1962.5.10.마산일보)한 후 1966년 1월27일 점촌~산양~용궁~개포~율현~가동~예천 간 28.9㎞에 이어 10월11일 예천~고평~보문~어등~반구~영주 간 29.7㎞가 개통됨에 따라 김천~영주 간 115㎞의 새로운 경북선이 탄생하였다.
▲ 경북선개통

일제강점기 1943년 발족된 안동철도사무소는 1946년 국유화되면서 안동철도국으로 바뀐 후 1964년 1월 5일 안동철도국은 폐지하고 영주철도국을 신설했으며, 1974년 8월22일 철도청은 영주철도국을 서울·부산·대전·순천과 함께 5개 철도국 명칭을 지방철도청으로 개칭하여 영주지방철도청으로 변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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