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예리 "'미나리'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예상했다면 뭐라도 했겠죠?"

노이슬 / 기사승인 : 2021-03-16 16:5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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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엔=노이슬 기자] 그야말로 원더풀한 <미나리>가 전 세계 영화사를 새로 쓰고 있다. 개봉 전부터 '제2의 기생충'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미나리>가 오스카에 입성했기 때문이다.

 

지난 15일(한국시간) 오후 9시 19분부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하 오스카) 후보가 발표, <미나리>는 윤여정이 여우조연상, 스티븐 연은 남우주상을 비롯해 음악상과 각본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총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기염을 토했다.

 

 

<미나리>는 희망을 찾아 낯선 미국으로 떠나온 한국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을 담은 작품으로, 연출과 각본을 맡은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 

 

국내 개봉 후 꾸준히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미나리>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부푼 꿈을 안고 새로 시작하는 이들을 격려하며 감동과 희망을 선사한다. 극 중 모니카로 분한 한예리는 <미나리>를 처음 제안 받았을 때는 이같은 뜨거운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단다.

 

"시나리오 받았을 때 그런 예상을 했다면 제가 뭐라도 했겠죠(웃음). 전혀 예상 못했어요. 지금도 얼떨떨한 기분도 있고 제 인생에서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미나리>는 이민자 가정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은 겪어봤을 삶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사랑받는 것 같아요.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순간이 잘 기록됐다 생각해요. 누구 하나 모난 캐릭터도 없어요. 감정을 강요하거나 강요 받는다던지 그런 느낌도 없고, 덤덤하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느낌이에요."

 

하지만 한예리가 <미나리>를 함께 하게 된 진짜 이유는 시나리오보다는 각본을 직접 쓴 정이삭 감독이다. "저는 사실 이 시나리오보다 감독님께 매료됐어요. 이 사람과 작업하는 과정이 재밌고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독님과 뭐든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비록 한예리는 오스카 후보 지명에 아쉽게 불발됐지만 누구보다 <미나리>에서 관객들을 울리는 역할이기도 하다. <미나리> 속 모니카가 고국에 있다가 함께 미국에 살러 온 모친 순자(윤여정)와의 재회씬은 '고춧가루씬'으로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다.

 

"이때 되게 많은 감정들이 섞여있었어요. (고춧가루를 가져온) 엄마의 마음이 어떤 마음일까 생각했고, 감사하고 행복하고 실제 귀한 것을 얻은 것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모습들을, 기대에 부흥하지 못한 모습들을 보여줘야 하는거였으니까요. 너무 기쁘고 좋은데 너무 속상하고 미안하고 아플 것 같았어요. 그런 많은 감정들이 순간순간 치고 올라올거 같았어요. 단순하고 심플해지려고 노력했죠."

 

한예리의 고심이 묻어난 '고춧가루씬'에 정 감독의 세세한 디렉팅은 없었다. 물건의 위치 정도만 체크했다. 총 촬영이 25회차에 끝났기 때문에 해당 씬 촬영 역시 순자 역인 윤여정과도 동선만 맞추면서 빠르게 진행했다. 

 

"그때 그냥 또 울고, 웃고가 동시에 진행되는 이게 재밌었어요. 그 상황과 씬들이 재밌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모니카는) 먼 타지에서 생이별하듯이 엄마를 두고 왔죠. 재회의 기쁨이라는게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찼겠다 생각하고 촬영장 가기 전까지 많은 생각을 했어요. 현장에서 다 이뤄지지는 않지만 명확한 감정들만 가져가려고 했던 기억이 나요."

 

 

반면 한예리가 직접 참여한 <미나리> OST는 오스카 1차 후보로 지명되며 많은 화제를 모았다. 최종적으로 불발 됐지만 한예리는 역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음악감독님과 얘기를 했어요. 엔딩 크레딧에 넣을 노래를 하나 했으면 좋겠다고. 이런 일이 벌어질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죠. 뭐라도 영화에 도움이 되는 것을 하면 기쁘겠다 생각해서 참여했어요. 이렇게 될줄 몰랐죠(미소). 

 

곡이 너무 아름다워서 모니카가 데이빗(앨런 킴)에 불러주는 자장가 같았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잔잔하게. 아름답게 나온 것 같아서 너무 좋아요."

 

한예리가 꼽은 <미나리> 속 명장면은 남편 제이콥(스티븐 연)과의 주차장 대화씬이다. 제이콥의 농장일이 잘 풀리지 않자 삶에 지쳐 포기 선언을 한다. 자신이 모친과 아이들을 데리고 도심에 살겠다고 하는 것이다. 해당씬은 '이별선언'이라 해석되기도 한다.

 

"저는 그 장면을 이별선언이 아니라 생각했어요. 제이콥이 도와달라는 장면을 보면 아이들을 데리고 가도 좋다고 해요. 그때부터 모니카는 절대로 입밖에 내지 않았던 말을 들으면서 현실로 고민했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때서부터 일을 하며서 본인이 경제적인 능력이 생기면서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주차장에서 본인이 힘들다고 얘기하죠. 나의 힘듦을 알아줬으면하다고 표현해요. '내가 너무 힘들어, 더는 못하겠다'고 하지 '끝내자'고 하지 않아요. 바꿔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모니카는 끝까지 그걸 못 놓아요. 이 가족의 해체를 전혀 바라지 않는 사람이 모니카라 생각했어요. 위로받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해요. 그런 뉘앙스로 얘기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게 물론 다 '헤어지자'라고 들릴 수 있지만 본인의 입으로는 헤어지자는 말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저라면 이미 (첫 등장하는)트레일러(바퀴달린 집) 앞에서 애들 태우고 다른곳으로 갔을 거에요(웃음)."

 

"팀 미나리"라고 부를 정도로 <미나리> 배우들을 비롯해 모든 제작진의 팀워크는 환상적이었다. 이는 완성된 영화가 증명하기도 한다. 한예리는 윤여정과 같은 숙소를 사용했고, 해당 숙소는 촬영이 끝난 저녁이 되면 정 감독과 스티븐 윤 등 모두 모여 식사하고 회의하는 아지트가 됐다.

 

 

"저는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어요. 호텔보다 가족적인 분위기였고, 소통하는 것도 빨랐고, 생활하는 측면들도 좋았어요. 빨래도 식사도 왜 여기서 지내는지 알겠더라고요. 그 집이 아지트처럼되서 다들 와서 저녁먹고 주말에는 다음 주에 해야하는 촬영장면 씬 바이 씬 하거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편하게 얘기했던 공간이에요. 오히려 영화로 접근하는데는 좋았던 기억이 나요. 

 

힘들었던 점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 뜨거운 열에 숨막히는 느낌이 있었어요. 체력적으로 걱정이 많이 됐죠. 자동차 씬 같은 경우는 핸들이며 문고리는 아예 만질 수도 없을 정도로 달아올랐어요."

 

한예리에게 <미나리>는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오스카 입성이라는 전 세계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는 "덕분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얻었어요"라고 했다.

 

"이런 일이 다시 또 올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에요. 그래서 이 영화가 더 각별한 것 같아요.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은 배우이지만 뒤돌아서서 봤을 때 <미나리>가 저한테 큰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어떤 선택을 하는데 많은 영향을, 선택에 대해 많은 영향을 주는 영화가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미나리>의 제이콥처럼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사실 배우의 모든 출연작이 성장이 들어가 있죠. 나이드는 과정까지 보여질테니까요. 천천히 순차적으로 보여주고 싶어요. 한 작품을 특정하고 꼽는 것이 아니라, 미흡했던 모습도 잘해낸 순간들도, 다 보여드리고 싶어요."

 

사진=판시네마, 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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