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신의 철길 따라⑯ ] 전국의 실업자들이 찾았던 만포선 부설공사

편집국 / 기사승인 : 2020-10-26 16: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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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엔=편집국] 일제강점기 서민들 생활의 한 단면을 찾아볼 수 있는 현장이 만포선 부설공사장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먹고살기 위해 찾았던 일터였던 만포선 부설의 역사를 더듬어본다.

▲만포선 

1926년 2월 6일자 동아일보에 의해 북조선 쪽의 임산물과 금, 은, 철 및 석탄 등을 반출하기 위하여 평남 순천~평북 강계 간 151마일에 만포진선을 관(官)에서 부설할 철도로 계획하고 있음이 보도된 후 애당초 계획 노선을 변경하여 공사비가 격증됨에도 첩첩산중에 수 많은 터널공사를 포함하는 쪽으로 결정하여 1931년 4월26일 순천에서 공사가 시작되었다.

1932년11월 1일 순천~천동 간 32.7㎞가 개통되었으며, 11월15일자 신문보도에 의하면 희천의 구현령(狗峴嶺) 남쪽에서 북쪽까지 15㎞에 16개의 터널을 뚫어야하는 조선 최대의 난공사 구간이 포함되어 육군항공기로 공중에서 측량한 자료와 육상측량대가 측량한 자료를 종합하여 측량 결과물을 만들기로 하였다 했다.  

 

1933년 7월28일자 신문보도는 동해선이나 경전선 등의 공사를 중단해가며 만포선 공사에 전력을 집중하고 있다 하였고, 10월15일 개천~구장 간이 개통되자 평당 7,80전하던 땅값이 10배 이상 폭등하여 10원에도 살 수 없게 되었다는 신문보도도 있었다. 

▲‘만포선가는 울산이민 60명’이라는 제목의 신문기사 

 

 

1934년 7월 9일자 동아일보에 의하면 강계읍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구현령 터널공사와 북쪽으로는 압록강철교 공사를 앞두고 수많은 노동자가 필요한데 주거허가 없는 중국인 노동자 200명에 대한 퇴거명령이 내려져 구현령 터널공사만도 하루 노동자가 1천명 이상이 필요하며, 공사 진행에 큰 차질을 초래하고 있다는데 1935년에는 노동인력이 16,500명이 필요하여 총독부 사회과에서 일당 80전 외 노동복 한 벌을 추가 지급하는 조건으로 2,000명을 알선할 계획이었다. 

 

당시 각종 신문에 보도된 각지의 노동인력을 보면, 전남 송정 100명, 경남 220명, 전남 학교 29명, 전북 김제15명, 울산 60명, 경북 문경 106명, 충북 청주 100명, 충남 서천 200명 등 전국 각지에서 노동인력이 모여들었으며, 이런 가운데 노동조건이 불리하다며 노동자 45명이 탈주했고, 당국은 결코 노동조건이 불리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보도되었다.   

▲구현령 순천쪽 터널공사장면 

 

희천군과 강계군 경계에 있는 구현령은 표고 815m에 기슭의 고차가 255m나 되는 복잡한 지형의 험한 산으로 만포선 공사 중 가장 어려웠던 구간으로 봉룡터널의 경우 예정되었던 길이보다 더 뚫었지만 관통이 되지 않아 출구 쪽에서 뚫고 들어갔지만 서로 만나지 못해 3개월을 허비했다는 1935년12월24일자 신문에도 보도된 구현령 입구에서 출구까지 16㎞구간 중 총 연장 7.5㎞에 달하는 터널 21개소와 8개의 철교 가설이 필요한 구간으로 하루 평균 4,000명이 투입되어 총 투입인원은 연 150만 명에 달하는 난공사 이었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기 위하여 고향을 떠나게 되자 연일 각 지방의 신문들은 이별의 소식을 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만포선 시각표(1941년 현재)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 1928년 개통된 천동~개천간 협궤철도 개천선을 매입하여 1933년 7월 광궤선으로 개량하여 만포선에 포함시켜 순천~개천 간 개통에 이어 1935년10월 개고 역까지, 1937년12월 강계 역까지 개통시킨 후 1939년 1월 강계~만포 구간이 개통됨에 따라 1월25일부터 시운전을 시작하여 2월 1일 착공 8년 만에 순천~중평~각암~룡원리~천동~개천~원리~봉천~자작~람전~구장~어룡~신흥동~북신현~묘향산~부성~희천~청하~초상~동신~개고~구현~고인~리만~운송~중암~전천~쌍방동~별하~오모노~공인~강계~곡하~쌍부~안찬~시중~외귀~만포 간 만포선 299.9㎞가 개통되어 하루 4개열차가 왕복운행을 시작하였다.
▲압록강 만포철교


또한 1939년 압록강에 두 번째 교량인 587m의 단선철도 만포철교가 개통됨에 따라 1938년 5월에 개통된 지안(輯安)~메이허커우(梅河口) 간의 메이지철로(梅輯鐵路)에 연결되어 신의주~단둥 간의 압록강 단선철교에 이어 한~중 간 두 번째 국제 철도가 연결되어 9월28일 만포철교 중앙에서 만포선~매집선 연결 개통식을 거행한 후 10월1일부터 한~중 간 열차운행이 시작되었다.

▲ 우다오커우-만포-순천승차권

만포철교를 압록강 제3의 철교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으나 만포철교는 두 번째 철교이며, 1943년 5월에 개통된 신의주~단둥 간의 복선철교가 세 번째 철교다.

▲압록강 뗏목

만주사변 후 일본의 새로운 식민지인 만주경영을 위한 군사목적과 평안북도 내륙지방 천연자원 개발을 위하여 부설된 만포선은 묘향산맥을 지나 적유령산맥과 강남산맥 및 자강고원을 가로지르는 철도연변 지역은 기온이 낮고 지형이 험준한 첩첩산중이었지만 만포선 개통 이후 개발이 시작되었다. 

▲ 만포철교와 연결된 중국쪽 선로

자강고원 동북부 삼림지대에는 전나무·가문비나무·잣나무·소나무·참나무·피나무·사시나무 등이 주를 이루며, 이들 원목을 전에는 압록강을 이용한 뗏목으로 신의주까지 운반하였으나, 만포선 개통 이후 위천·만포·오가리·강계·희천 등 원산지에서 원목을 제재한 후 만포선을 이용하여 각지로 운반하게 된 만포는 중국을 마주보는 국경의 목재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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