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신의 철길 따라 21화 ] 경춘철도 이야기

  • 편집국 기자 / 2020-12-07 11: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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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엔=편집국] 우리철도 역사를 살펴보면 사설철도로 시작된 노선의 역사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아 많은 오류가 따르게 되며 경춘선의 경우 부분적인 보도 자료를 오해하여 엉뚱한 결론을 도출한 예로 ‘1천만 원의 대회사가 일본 내지(內地)의 자본을 가져오지 않고 조선내의 자본으로 되는 것은 조선재계의 팽창’이란 내용을 ‘민족자본으로 부설했다’고 오해하는 경우 등이 있어 당시 신문 보도내용과 관보 등 자료를 중심으로 경춘선 이야기를 정리해본다. 


1920년 3월 2일자 조선시보에 의하면 전북 군산의 일본인 오오다이라 도쿠사부로(大平德三郞)의 기획으로 1920년 2월24일 동경의 자본가 거물 13명이 자본금 600만원으로 한강상류 2개소에 6,500KW의 발전소를 건설하여 얻는 전력으로 경성~춘천 간 49마일에 전철건설 청원서를 총독부에 제출했다는 보도에 이어 4월13일자 신문은 춘천지역에서 지역발전에 기대를 가지고 속성운동을 개시하는 등 환영일색으로 곧 허가가 날것으로 기대한다는 보도가 뒤따랐다. 

 

4월22일자 신문에서는 강원도 화천, 인제, 홍천 등 3개 군에서는 각종 공업을 기획하는 등을 보도하였고, 9월 6일 동아일보와 9월10일 매일신보에 의하면 경춘 간 전철부설을 위하여 8월22일 춘천상업조합 내에 일본인들이 경춘전기철도기성동맹회를 조직하여 선정된 13명의 간사가 용지매수 등 관련 업무를 추진한다는 기사가 뒤를 이었다.

다음해인 1921년 7월27일자 신문에는 경춘 간 전철을 작년 8월 인가를 받고도 지연되고 있음은 유감이라며, 지난 6월19일과 20일 전철속성동맹회를 조직하여 조선인12인과 일본인 8명의 대표자가 결의문을 작성하여 일본 동경에 있는 경춘 간 전기철도주식회사 창립사무소로 보냈다는 기사가 보도되고, 5년이 지난 1926년 1월17일자 신문에는 일본인 춘천번영회장이 철도국장을 방문하여 1920년에 허가된 경춘전철 속성청원 진정을 하였다는 기사에 이어 1926년 2월 7일자 신문에는 춘천번영회가 경춘 간에 이어 김화~충주 선까지 부설할 목적으로 경춘철도기성회를 조직했다고 했다. 

 

그러나 다음날 신문에 원주에서는 ‘원주동지구락부’를 조직하여 경춘철도 속성을 반대하고, 원주~강릉선의 속성운동을 추진키로 하고 대표가 상경했다는 지역 간 알력이 있음이 보도되었지만, 부설허가 후 공사시행 신청이 없어 경춘선전철부설면허는 1926년 9월21일자로 실효되었다(1926. 9.23일 관보 4229호).  

▲‘京春鐵道期成會記念’이 새겨진 황소상

그 후 1935년11월18일자 신문에 의하면 11월10일 춘천유지 간담회에서 ‘경춘철도기성회’를 조직하고, 공사비 600만원 중 120만 원은 주식, 380만원은 금융기관 차용을 결정하고, 일본인 회장아래 일본과 조선인 각 1인의 부회장과 평의원 40명을 선정했으며, 인접 화천, 양구, 인제, 홍천 및 가평군 순회 홍보로 공동 추진과 주식 매수책임 분담 약속에 이어, 100여명의 관련 토지의 지주(地主)모임에서도 협력을 약속받아 토지매수위원회를 조직했으며, 철도국과 경기도청에서는 경춘철도 부설과 직, 간접적으로 관계될 각 지방의 재원조사를 시작하였다.

1936년 5월20일자 신문에는 투자 금 1천만 원의 회사사장은 총독부 알선을 받아 의원면직한 총독부 내무국장, 전무에는 식산은행 검사역, 지배인에는 원산철도사무소장 등의 일본인들이 내정되었으며, 6월12일자 신문은 3만주 주식공모에 10배인 30만주 이상을 신청한 것은 10년 전 조그만 회사하나를 창립하려면 일본 내지(內地)의 자본을 받았는데 1천만 원의 대회사가 조선내의 자본으로 쉽게 된 것은 조선재계의 팽창을 말하는 현상이라 보도하였으며, 1936년 7월13일 청량리~춘천 간 92.2㎞, 궤간 1,435㎜, 동력은 증기 및 가솔린, 건설비 9백만 원의 사설철도 부설이 허가 되었고(1936. 7.17.관보 2853호), 7월20일 경춘철도주식회사가 창립에 자본금 1천만 원인 주식 20만주의 주주 932명 중에는 1,000주 이상을 소유한 조선인 주주가 10명이 포함되었다고 보도되었다.

▲경춘선 첫 열차와 성동역(1939.7.23.동아일보)

 

1939년 6월 1일자 신문에는 지하철도를 동대문에서 제기동까지 제1기로 건설하여 경춘철도와 연결한 후 제2기로 동대문에서 서울역까지 약 400만원을 투입하여 2년 내 완공하려는 지하철도 건설계획을 서울시와 경기도에 허가원을 제출했지만 실제 착공은 되지 않았다. 

▲ 경춘선 첫 열차와 성동역(1939.7.23.동아일보)

경춘철도의 화천, 인제, 양양 등 까지 연장운동이 계속되는 가운데 1937년 5월 착공하여 공사비 1,400여만 원과 연인원 260만 명이 투입되어 성동~고상전~월곡~연촌~묵동~태릉~갈매~퇴계원~사릉~금곡리~평내~마석~대성리~청평~상천~상색~가평~서천~백양리~강촌~의암~신남~성산~춘천 간 93.5㎞의 경춘선이 완공됨으로서 1939년 7월23일 개통식에 이어 24일부터 영업이 시작되었으며, 8월부터는 퇴계원 약 4만평의 부지에 운동장과 유원지를 건설하여 주말 등에는 경성~퇴계원 간 임시열차가 운행되기도 하였다. 

▲ .관보3754호

경춘선은 해방 후 1946년 5월17일 미군정법령 제75호에 의거 국유화되었으며, 1974년 8월15일 서울~청량리 간 지하철 개통으로 1939년 경성~제기동 간 지하철계획은 35년 만에 현실화 되었고, 1920년의 전철 부설계획은 2010년12월21일 성북~화랑대 구간이 폐지되고 망우~춘천 간 복선전철이 개통되면서 90년 만에 경춘선 전철이 현실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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